윤리에 대한 진술과 규범적 윤리
윤리를 현상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윤리는 윤리학보다는 진화심리학이나 사회학을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누군가 윤리 규범을 제시하는 것은 첫째로 심리적 행위이며 둘째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윤리 즉, 사회적 사실로서의 윤리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이 관점에서 우리는 규범적 윤리를 제시할 수 없다. 말하자면 물리학자에게 물리법칙은 선하거나 악하지 않고 관찰되거나 추론되는 대상일 뿐이다. (물론 윤리를 이 관점에서 바라보기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윤리적인 결정이기도 하다.)
메타윤리학을 포함하여 우리 삶의 대부분의 결정은 규범 윤리적인 주장을 포함한다. 만약 당신이 객관성이 주관성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거나, 우리가 실제로 관찰하고 있는 것에 우리가 관찰하지 못한 것 보다 더 많은 관심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윤리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실존주의자는 존재의 가치에 대한 질문에 윤리적 가치를 부여하고, 과학자는 객관적 현실과 그것의 규칙에 윤리적 가치를 부여한다.
보편적으로 우리가 반드시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지 여부는 의심스럽다. 되려 이 질문에 대해 유일하게 실질적으로 보이는 대안은 실용주의를 수용하는 것 뿐인 듯 하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 내용이 현실과 괴리되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에 유용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실보다 꿈의 세계가 더 가치있을 지 모른다.
원론적으로 이 문제는 실존적 부조리성의 다른 형태이다. 우리는 현실이 우리에게 보증수표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고뇌하고, 현실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으로 어떤 보증수표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런 보증수표는 없는 것 같다.
불교적 윤리에 대한 짦은 고찰
불교는 선정(禪定)에 의해 경험주의적으로 주어지는 인과를 포함하는 구조주의를 그 이론적 근간으로 삼는다. 또한 법상(法像)과 비법상(非法像)을 타파하라는 것에서 우리는 불교가 메타적인 인식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불교는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실용주의적 견지에서 앞선 지향을 긍정한다. 또한 불교는 그것이 실존적 사실이라는 견지에서 이것을 긍정한다.
실존적 사실의 추구는 분명히 매력적인 면이 있다. 이 주장이 어떤 분류에 속해야 하는지의 여부는 실존적 부조리성의 문제이다. 필자는 누군가에게 이것이 설득력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독서목록
- 금강경 (44p)
- 서양철학사 3부(1190p)
- Dune (44%)
- Understand Machine Learning (85p)
- Seven Sketches in Compositionality (1-117pp, 221-242pp)
- 인간관계론 (42%; 105p)